점심을 먹고 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집중력이 뚝 떨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회의 중에 하품을 참느라 애쓰다 보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게으른 것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함께 밀려옵니다. 그런데 낮잠을 자는 습관은 최근에 생긴 게으름이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온 수면 방식에 가깝습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밤에 한 번에 몰아 자는 대신 하루를 두 토막으로 나눠 자는 이상수면(biphasic sleep)이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널리 관찰됐습니다. 지중해와 라틴아메리카의 시에스타(siesta) 전통도 이런 이상수면(biphasic sleep)의 한 형태이며, 오늘날에도 오후의 처짐은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몸속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확인돼 있습니다.
이상수면(biphasic sleep), 낮잠은 원래 인류의 기본값이었다
15~20세기에 걸쳐 의료 문헌과 일기, 법정 기록, 문학 작품에는 첫 수면(first sleep)과 둘째 수면(second sleep)을 언급한 기록이 500건 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산업화 이전 인구가 밤을 한 덩어리로 자는 대신 중간에 깨어 활동하는 시간을 두고 다시 잠드는 이상수면(biphasic sleep) 패턴을 폭넓게 따랐다는 근거로 꼽힙니다. 즉 하루 한 번, 길게 몰아 자는 지금의 수면 방식이 오히려 산업화 이후에 자리 잡은 비교적 최근의 습관인 셈입니다.
지중해의 시에스타(siesta), 실제로는 이렇게 짜여 있었다
다만 오늘날 지중해 국가들도 표준화된 근무시간이 자리 잡으면서 전통적인 시에스타(siesta) 관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시에스타(siesta)를 하나의 완성된 제도로 그대로 들여오기보다, 그 안에 담긴 짧은 낮잠의 효과만 골라 쓰는 편이 지금의 근무 환경에는 더 현실적입니다.
오후 슬럼프는 의지 문제가 아니라 생체리듬(circadian rhythm)
오후 2~4시 사이에 에너지와 인지 수행능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현상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생체리듬(circadian rhythm) 현상입니다. 다만 이 처짐이 나타나는 시각과 정도는 개인의 크로노타입과 전날 활동량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후에 유독 몸이 처진다고 해서 게으른 게 아니라, 몸이 원래 그렇게 설계돼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낮잠 길이별 효과, 얼마나 다를까
즉 낮잠은 무조건 짧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20분 정도로 짧게 끊거나 90분을 채워 온전한 주기를 도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중간하게 30~60분을 자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NASA도 확인한 짧은 낮잠의 힘
NASA가 조종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단 26분의 낮잠만으로 경계심이 54%, 수행 능력이 34% 개선된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이는 항공 운영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환경에서 나온 수치라 일반 사무직 업무에 그대로 대응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짧은 낮잠이 실제로 측정 가능한 수준의 각성 효과를 낸다는 방향성만큼은 참고할 만합니다. 실제로 오후 초 낮잠을 규칙적으로 취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지 수행능력에서 뚜렷한 개선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돼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낮잠, 시도해볼 이유와 한계
이틀 연속으로 잠이 부족했던 뒤에 점심시간 낮잠을 자면 그날 저녁의 수행 능력 저하가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업무 중 짧은 낮잠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실질적인 회복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낮잠 시간대가 25분이냐 90분이냐에 따라 그날 밤의 수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 비교 연구는 학생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결과라 일반 직장인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낮잠을 너무 길게 자면 밤잠을 방해할 수 있다는 방향성은 참고할 만합니다. 그러니 업무 중 낮잠을 시도한다면 90분보다는 25~30분 정도로 짧게 끊는 편이 안전합니다. 카페인을 마신 직후 곧바로 짧게 눈을 붙이면, 카페인이 뇌에 작용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낮잠에서 깨어나는 시점이 맞물려 더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전략도 있으니 함께 시도해볼 만합니다.
매일 낮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면, 오해와 확인
이상수면(biphasic sleep)을 실제 생활에서 습관화한 사람들은 오히려 단상(monophasic) 수면자보다 수면의 질이 낮고 주간 졸음이 더 많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특히 장시간 낮잠은 깨어날 때 수면관성(sleep inertia)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이상수면(biphasic sleep)이 단상 수면보다 더 자연스럽거나 건강에 낫다고 판정할 만큼 충분한 증거는 아직 없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하루 총 수면 시간을 7~9시간으로 일관되게 채우는 것입니다. 낮잠은 이 총량을 보완하는 도구로 쓸 때 효과가 나는 것이지, 밤잠을 줄이고 낮잠으로 메우는 방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