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이나 만성 염증 때문에 커큐민(curcumin) 보충제를 알아보다 보면 꼭 마주치는 문구가 있습니다. '커큐민은 원래 흡수가 안 되는 성분이라 피페린(piperine)이나 나노화 기술을 더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 흡수율을 끌어올리는 기술은 최근 몇 년 사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예전에는 드물던 강황·커큐민 관련 간 손상 사례가 새롭게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흡수율 문제가 정말 해결된 것인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더 살펴야 하는지 근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기전부터: 왜 흡수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까
커큐민은 물에 거의 녹지 않는 친지용성 성분입니다. 경구로 섭취해도 간과 장벽에서 빠르게 대사돼 혈액까지 도달하는 양이 적은데, 단독으로 먹었을 때 혈중에서 확인되는 활성 커큐민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 라벨에 적힌 '커큐민 함량'과 실제 몸속 '혈중 도달량'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강황 추출물 함량이 높다고 적힌 제품이라도, 흡수를 돕는 성분이 없으면 혈중에서 확인되는 양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임상이 확인한 범위: 피페린 병용은 흡수율을 실제로 높입니다
1998년 국제학술지 Planta Medica에 실린 연구(Shoba 등)는 검은 후추 추출물 속 피페린을 커큐민과 함께 먹였을 때 동물과 건강한 성인 자원자 모두에서 혈중 커큐민 농도가 뚜렷하게 올라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흡수율을 높인다는 주장 자체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 연구가 확인한 건 '혈중 농도가 얼마나 올라가는가'였을 뿐, 그렇게 흡수된 커큐민이 통증이나 염증 지표 같은 실제 증상을 그만큼 더 개선하는지는 별도로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흡수율 개선과 임상 효과 개선은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점을 구분해두시는 게 정확합니다.
광고 과장: '천연이라 안전하다'는 말, 다시 봐야 합니다
2023년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약인성간손상네트워크(DILIN, Drug-Induced Liver Injury Network) 분석은 강황 제품을 먹은 뒤 간손상이 의심된 미국 환자 10명의 사례를 정리했습니다. 이 중 9명은 간세포성 간염, 1명은 혼합형 양상이었고, 일부는 흡수를 높이는 피페린 함유 제품을 함께 먹고 있었습니다.
표에 정리된 사례는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나온 보고입니다. 다만 원료 자체는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강황·커큐민이라, 사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NIH가 운영하는 LiverTox 데이터베이스(2025년 6월 갱신)도 같은 흐름을 확인해줍니다. 강황·커큐민은 원래 간 손상 빈도가 낮은 성분으로 분류돼 있었지만, 최근 수십 건의 사례가 새로 보고되며 안전성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복용을 중단하면 대부분 호전되는 경과를 보여, 원인 성분과의 연관성 자체는 임상적으로 인정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광고는 '천연이니 부작용이 없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표시에서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어, 이런 안전성 과장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왜 하필 지금 늘었을까
고용량이거나 피페린·나노화 같은 흡수 개선 기술이 들어간 제형에서 위험이 더 높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용량·제형·개인의 유전적 대사 차이에 따라 정확한 위험 규모까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천연 성분이니 부작용이 없다'는 통념과는 다른 이야기이니, 흡수율을 높인 제품일수록 복용 후 몸 상태를 조금 더 눈여겨보는 편이 좋습니다.
형태·용량: 저용량은 대체로 안전, 고용량은 위장 반응 주의
고용량이거나 흡수를 높인 제형에서는 속쓰림, 설사, 메스꺼움 같은 위장 불편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루 1,000mg 이내의 저용량 범위에서는 대체로 내약성이 양호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장 반응이 나타난다면 무조건 중단하기보다, 용량을 낮추거나 식사와 함께 먹어본 뒤 그래도 반복되면 복용을 멈추는 순서가 현실적입니다.
이 신호가 나타나면 지체 말고 병원으로
아래 네 가지는 흔한 위장 부작용과는 다른, 간 기능 이상을 의심해야 하는 신호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나타난다면 커큐민 복용을 즉시 멈추고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 중단 후 호전되는 경과를 보이지만, 스스로 판단해 넘길 증상은 아닙니다.
함께 먹는 약이 있다면 반드시 확인하세요
커큐민과 피페린은 와파린, 다비가트란 같은 항응고제·항혈소판제와 함께 먹으면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약을 복용 중이라면 커큐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피페린은 약물을 분해하는 CYP3A4, CYP2C8 같은 간 효소를 억제할 수 있어, 함께 먹는 다른 약의 혈중 농도를 예상보다 높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러 약을 복용 중이라면 커큐민 추가 전에 약사나 의사에게 전체 복용 목록을 보여주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래서 나는 먹어도 될까: 자가 판단
지금까지 내용을 한 번에 정리하면 아래 흐름으로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흡수율을 높이는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흡수가 잘 될수록 몸에 들어오는 활성 성분의 양도 함께 늘어난다는 뜻이니, 효과를 더 기대하는 만큼 몸 상태 변화도 그만큼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균형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