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자차(물리자차) 제품 성분표를 보면 산화아연(zinc oxide)과 이산화티타늄(titanium dioxide)이 함께 또는 따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 다 무기자차라는 큰 분류는 같지만, 실제로 막아주는 자외선 범위와 발림성은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산화아연은 UVA·UVB를 폭넓게 막는 편이고, 이산화티타늄은 UVB 차단에는 강하지만 UVA, 특히 가장 깊이 침투하는 UVA1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산화아연, UVA1까지 폭넓게 막습니다
산화아연은 340~400나노미터의 UVA1 범위까지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광노화를 주로 일으키는 파장대까지 커버한다는 뜻이라, 무기자차 중에서는 가장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범위는 진피까지 침투해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손상시키는 파장대와 정확히 겹칩니다. 산화아연이 광노화 예방 성분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산화티타늄, UVB에는 강하지만 UVA1은 약합니다
이산화티타늄은 290~320나노미터의 UVB 범위에서 강한 차단력을 보이지만, 340나노미터 이상의 UVA1 파장에서는 차단력이 뚜렷하게 떨어집니다. 화상 예방에는 유리해도 광노화 예방만 놓고 보면 산화아연보다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서 이산화티타늄 단독 제품은 일광화상 방지에 최적화된 편이고, 광범위한 보호가 목표라면 산화아연이 포함됐는지 또는 다른 UVA 차단 성분이 함께 배합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외선 차단제의 UVA 보호력은 ISO 24443이라는 별도의 국제표준으로도 평가됩니다. 이 방법은 사람 피부가 아니라 특수 처리된 PMMA 판에 제품을 얇게 펴 바른 뒤 자외선 투과도를 분광기로 측정하는 실험실(in vitro) 방식입니다.
이런 실험실 측정 방식은 사람 피부에 직접 시험하는 방식보다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지만, 실제 피부 환경과 100%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함께 언급됩니다.
자외선을 막는 방식은 같습니다
두 성분 모두 화학 반응 없이 피부 표면에 머무르면서 자외선을 물리적으로 반사·산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점에서는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타늄이 같은 원리를 공유합니다.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바꾸는 화학 반응 방식의 유기자차와 달리, 두 성분 모두 표면에서 반사·산란시키는 물리적 방식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백탁, 왜 생기고 어떻게 줄이나
두 성분 모두 입자가 크면 백탁(하얗게 뜨는 현상)이 생깁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이산화티타늄이 산화아연보다 백탁이 적고 발림성이 좋다고 보고됩니다.
백탁은 입자가 가시광선을 산란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차단력이 좋다는 신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다만 화장 위에 하얗게 뜨는 정도는 제형 기술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백탁 정도는 무기자차 입자 크기뿐 아니라 함께 배합된 오일·실리콘 성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같은 산화아연 함량이라도 제품마다 체감 백탁이 다른 이유입니다.
나노 입자 기술, 걱정해야 할까
나노 크기 입자를 쓰면 백탁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입자가 작아질수록 피부 흡수 여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있지만, 무기자차는 기본적으로 표피에 머무르며 혈중에서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확인된 안전성 프로필입니다.
나노 입자 자체가 위험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다만 흡수 여부가 걱정된다면 나노 표기가 없는 제품을 고르거나, 성분표에서 '나노(nano)' 표시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대응하면 됩니다.
나노 입자 여부와 별개로, 무기자차는 화학 반응 없이 표면에서 물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민감성 피부나 임신·수유 중에도 비교적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선택지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준으로 고르면 될까
광노화나 기미까지 신경 쓰인다면 산화아연이 포함된 제품을, 백탁이 유독 부담스럽고 짧은 야외활동 위주라면 이산화티타늄 비중이 높은 제품을 고르는 식으로 나눠 생각하면 됩니다.
두 성분을 함께 배합한 제품도 많습니다. 이 경우 두 성분의 장점을 어느 정도씩 나눠 가지므로, 성분표에서 두 성분의 순서(농도가 높을수록 앞쪽에 표기)를 참고하면 대략적인 비중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나 브랜드보다 먼저 확인할 것은 이 순서입니다.
그래도 백탁이나 각질이 심하게 남는다면
무기자차는 유기자차보다 두껍게 발리는 편이라, 양을 줄여 바르면 오히려 차단력이 떨어집니다. 백탁이나 밀림이 심하다면 제품을 바꾸기 전에 스킨케어 단계에서 수분을 충분히 채웠는지부터 점검해보세요. 그래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피부과나 화장품 매장에서 발림성이 개선된 제형을 상담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피부 톤이 어둡다면 백탁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어 이산화티타늄 비중이 높은 제품이나 틴티드(유색) 제형이 실용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성분 모두 오랜 기간 사용돼온 만큼 안전성 데이터가 풍부하게 쌓여 있는 편입니다. 성분 자체를 걱정하기보다는 내 피부와 활동 패턴에 맞는 조합을 고르는 데 집중하면 됩니다.
산화아연과 이산화티타늄은 같은 무기자차라도 막아주는 파장 범위와 사용감이 다릅니다. 어느 한쪽이 무조건 우월하다기보다, 광노화 예방을 우선할지 발림성을 우선할지에 따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