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미국 ○○ 대학 연구 결과', '임상시험으로 입증'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으면 그것만으로 신뢰가 갑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연구'가 같은 무게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연구에도 위계가 있고, 숫자를 읽는 몇 가지 기준만 알아도 광고 문구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연구에도 위계가 있습니다: RCT부터 메타분석까지
무작위 대조 시험, 흔히 RCT라 부르는 연구는 참가자를 무작위로 치료군과 대조군에 배정해 다른 변수의 영향을 통계적으로 제어하는 설계로, 개별 임상 연구 중에서는 가장 신뢰도가 높습니다.
코호트 연구는 노출군과 비노출군을 장기간 추적하는 관찰 연구로, RCT보다 신뢰도는 낮지만 오랜 기간과 현실적인 인구집단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러 RCT를 모아 통계적으로 합산하는 메타분석과 체계적문헌고찰은 임상 근거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개별 연구 하나가 가진 한계를 보완해주기 때문입니다. 광고에 '메타분석에서 확인됐다'는 문구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더 신뢰할 만한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위험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문구의 함정
상대위험도 감소만으로 결과를 표현하면 절대 발생률 자체가 낮은 경우 실제 의미가 과장될 수 있습니다. 발생률이 0.1%인 질병에서 상대위험도가 50% 줄었다고 해도, 절대위험도는 0.05% 줄어든 것에 불과해 실제 체감 효과는 미미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서 '위험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문구를 보면, 그 절반이 무엇의 절반인지, 원래 발생 확률이 얼마였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혈중 수치가 좋아졌다고 몸이 좋아진 건 아닙니다
혈중 루테인이나 혈중 오메가3 수치 같은 대리지표의 개선이 반드시 질병 예방이나 증상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AREDS2 연구에서는 루테인 보충이 혈중 루테인 수치는 높였지만, 연령관련 황반변성의 진행을 의미 있게 지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혈중 농도가 올라갔다'는 문구와 '증상이 개선됐다'는 문구는 다른 무게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궁금한 것은 몸이 좋아지느냐이지, 혈액 수치 하나만은 아닙니다.
P값 0.05,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말의 뜻
P값은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때 이런 결과가 우연히 나올 확률'을 뜻하며, 값이 작을수록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관례적으로 0.05 미만을 유의성의 기준으로 봅니다.
다만 통계적 유의성과 임상적 의미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표본이 매우 크면 아주 작은 차이도 통계적으로 유의해질 수 있어, 유의하다는 말만으로 실제 체감 효과가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표본이 작으면 결과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표본 크기가 작은 연구는 통계적 검정력이 낮아 실제 효과를 놓칠 수 있고, 우연히 유의한 결과가 나왔더라도 신뢰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연구에서 입증됐다'는 광고 문구를 볼 때는 몇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였는지도 함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 누가 돈을 댔을까
제조사가 후원한 연구는 독립적인 연구보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고, 출판 편향으로 부정적인 결과는 잘 발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논문을 볼 때 자금 출처와 이해충돌 선언문을 확인하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여러 가설을 테스트하다 유의한 결과만 골라 발표하는 P-해킹이라는 관행도 존재합니다. 광고 문구 하나가 나오기까지 여러 번의 실패한 시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다른 이야기입니다
관찰 연구에서는 교란변수 때문에 인과관계를 착각하기 쉽습니다. 오메가3를 많이 먹는 사람은 대체로 건강한 생활습관도 함께 갖고 있을 확률이 높아서, 실제로는 그 생활습관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예방'과 '진행 지연'은 다른 말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질병 발생을 막는 예방과, 이미 질병이 있는 사람의 악화를 늦추는 진행 지연은 다른 의미입니다. 광고에서 '예방에 도움'이라는 문구를 볼 때는 그 연구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는지, 이미 질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는지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셀프체크 순서
판단이 안 서면 이렇게 나눠보세요
광고보다 전문가 상담이 먼저인 경우
연구를 완벽히 검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 대상 임상시험인지, 표본은 충분한지, 절대위험도까지 확인했는지 이 세 가지만 습관으로 만들어도 광고 문구에 흔들리는 일이 크게 줄어듭니다. 그래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약사나 의사에게 그 광고 문구를 그대로 보여주고 의견을 구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