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할 일, 오래전 후회까지 한꺼번에 밀려와 도무지 잠들 수 없는 밤이 있습니다. 몸은 분명 피곤한데 머릿속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이 상태, 많은 사람이 취침 전 흔히 겪는 경험입니다.
이렇게 여러 생각이 빠르게 연달아 떠올라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를 생각폭주(racing thoughts)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건 이 생각폭주가 반추(rumination)나 걱정(worry)과는 다른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생각폭주와 우울 증상은 불면증 심각도와 직접 연관되지만, 반추와 걱정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생각폭주는 반추·걱정과 다릅니다
이 결과는 임상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어, 일반 인구에서의 정확한 빈도나 심각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취침 전 떠오르는 생각이 다 같은 게 아니라는 방향성만큼은 참고할 만합니다. 아래 표로 세 가지 개념을 구분해보겠습니다.
취침 전 시간대에 유독 심해지는 이유
생각폭주는 하루 중 아무 때나 고르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저녁과 취침 전 시간대에 뚜렷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잠들기까지 오래 걸리는 입면 불면증(sleep onset insomnia) 환자에게서 이런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반면 잠은 잘 드는데 자다가 자주 깨는 수면유지 불면증(sleep maintenance insomnia) 환자에게서는 이런 취침 전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불면증 하위 유형에 따라 양상이 다르므로 모든 불면 증상을 하나로 뭉뚱그려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잠들기 자체가 어려운 쪽이라면 이 글의 내용이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취침 전 생각폭주의 배경에는 인지적 과각성(cognitive hyperarousal)이라는 상태가 있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뇌 영상 연구에서는 전두엽, 전방측두엽, 전방대상회피 부위의 포도당 대사가 증가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이 뇌 영상 연구는 임상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일반적인 불면증이나 일시적인 생각폭주와 정확히 어떻게 대응되는지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생각폭주가 단순한 의지 문제가 아니라 뇌의 각성 상태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점은 이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불면증 환자의 REM 수면은 각성 사건과 안구 운동이 훨씬 많은 이른바 불안정한 REM 상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깨어있을 때와 비슷한 생각 같은 야간 정신 활동을 만들어내고 이를 더 쉽게 기억하게 만듭니다.
REM 수면의 이런 변화가 생각폭주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아니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인지는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다가도 생각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 단서로 볼 수 있습니다.
불안과 기분 기질이 있다면 더 취약합니다
취침 전 생각폭주는 순환기질(cyclothymic traits)이나 불안과 특히 강한 관련을 보입니다. 이는 과각성과 정서 조절이 잘 안 되는 내재적 특성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평소 불안 수준이 높거나 기분 기복이 있는 편이라면, 취침 전 생각폭주를 유독 심하게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안과 기분 기질이 생각폭주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확인된 만큼, 불안을 관리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 축이 됩니다.
지금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
그래도 계속된다면 CBT-I를 고려하세요
혼자 시도하는 방법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불면증 인지행동치료(CBT-I)를 고려해볼 차례입니다. CBT-I는 야간 스트레스와 생각폭주를 완화하는 동시에, 잠에 대한 부적응적인 신념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