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가 펜이 화면에 닿았는데도 커서가 꿈쩍하지 않거나, 힘을 줘서 눌러도 눌러도 선이 똑같은 굵기로만 그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일이 생기면 당황스럽지만, 원인은 거의 대부분 태블릿이나 펜 하드웨어 고장이 아니라 드라이버 설정이나 입력 방식 충돌에 있습니다.
와콤·휴이온 같은 펜 태블릿은 전용 드라이버가 필압·커서 위치·화면 매핑까지 전부 관장하기 때문에, 윈도우 업데이트나 새 그래픽 프로그램 설치 직후에 설정이 꼬이는 일이 특히 잦습니다. 드라이버 재설치나 새 태블릿 구매로 넘어가기 전에, 아래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보면 대부분 몇 분 안에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흔한 원인부터 짚어보기
셀프체크 순서
필압이 안 먹을 때 · WinTab이냐 Windows Ink냐
필압이 아예 안 먹거나 선 굵기가 일정하게만 나온다면 입력 방식 설정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태블릿 드라이버는 보통 'WinTab'과 'Windows Ink' 두 가지 입력 방식을 지원하는데, 이 둘이 쓰고 있는 그래픽 프로그램과 안 맞으면 필압이 죽습니다. 싱글 모니터 환경에서는 드라이버 설정을 'WinTab'으로 바꾸면 필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으니 먼저 시도해볼 만합니다. 반대로 듀얼 모니터를 쓰고 있다면 'Windows Ink' 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니, WinTab으로 바꿔도 그대로라면 Windows Ink로 다시 바꿔보세요. 어느 쪽이든 설정을 바꾼 뒤에는 반드시 드라이버를 재시작하거나 PC를 재부팅해야 변경 사항이 적용됩니다. 그냥 설정 창만 닫아서는 반영되지 않으니 주의하세요.
입력 방식을 이리저리 바꿔도 필압이나 커서 반응이 이상하다면, 이번엔 반대로 태블릿 드라이버와 윈도우 자체의 Windows Ink 시스템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엔 태블릿 드라이버 설정 화면에서 'Windows Ink 사용' 항목의 체크를 해제하면 필압과 커서 끊김이 함께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방법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주 보고되는 해결책이라 모델마다 체감이 다를 수 있지만, 껐다 켜보는 것만으로 손해 볼 일은 없으니 먼저 해보고 판단하면 됩니다.
커서가 손끝과 다른 곳에 찍힐 때 · 디스플레이 매핑
펜을 댄 위치와 실제 커서가 나타나는 위치가 어긋난다면, 태블릿 드라이버의 디스플레이 매핑 설정을 확인해야 합니다. 듀얼 모니터를 쓰고 있다면 드라이버 설정에서 '활성 디스플레이'를 지금 그림을 그리는 모니터로 직접 지정해줘야 커서가 제대로 따라옵니다. 자동 인식에 맡겨두면 태블릿 전체 영역이 두 모니터에 걸쳐 매핑되면서 커서가 반대쪽 화면 좌표로 튀는 일이 흔합니다. 싱글 모니터인데도 커서가 어긋난다면 앞서 다룬 Windows Ink 충돌일 가능성이 있으니, Windows Ink를 꺼본 뒤 다시 확인하는 순서로 넘어가면 됩니다.
선이 끊기거나 떨릴 때 · 그래픽카드 드라이버 충돌
펜으로 선을 그었을 때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기거나 미세하게 떨리는 지터 현상이 나타나면, 태블릿보다 그래픽카드 드라이버 쪽 설정이 원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쓰고 있다면 그래픽 드라이버 설정에서 '수직 동기(V-Sync)'를 끄기로 바꿔보세요. 이 조합에서 지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V-Sync를 끄면 화면 가로줄이 갈라지는 티어링이 생길 수 있지만, 그림 작업에서는 화면 재생보다 선이 매끄럽게 나오는 쪽이 더 중요하니 감수할 만한 정도입니다. V-Sync를 꺼도 지터가 그대로라면, 앞서 설명한 드라이버 완전 삭제 후 재설치로 넘어가 최신 버전으로 다시 깔아보세요.
펜촉이 닳았을 때 · 소모품 교체 타이밍
길게 그은 선이 앞부분은 진하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흐려지거나 인식이 약해진다면 펜촉(니브) 마모를 의심해야 합니다. 펜촉은 소모품이라 오래 쓰면 닳는 게 정상이고, 대부분의 제조사가 교체용 펜촉을 별도로 판매합니다. 다만 펜촉을 바로 교체하기보다는, 먼저 드라이버를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설치해서 인식이 나아지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소프트웨어 문제인데 펜촉만 새로 사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설치까지 해봤는데도 선이 흐려진다면, 그때는 펜촉 교체가 맞는 방향입니다.
무선 태블릿·충전식 펜이라면 추가로 확인할 것
태블릿이나 펜이 USB 리시버로 연결되는 무선 방식이라면, 유선 제품과는 다른 확인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먼저 USB 리시버가 포트에 제대로 꽂혀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하고, 한 포트에서 인식이 안 되면 다른 포트로 옮겨 꽂아보세요. 접촉 불량은 무선 리시버가 갑자기 안 잡히는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안 잡히거나 커서가 자꾸 끊긴다면 USB 3.0 포트와 2.4GHz 무선 신호가 서로 간섭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리시버를 USB 2.0 포트로 옮기거나, USB 3.0 포트에 꽂아야 한다면 연장 케이블로 포트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띄워보세요. 무선 키보드·마우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간섭이라 태블릿 리시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충전식 펜을 쓰는데 충전이 안 된다면 먼저 충전 포트를 들여다봐서 이물질이 끼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세요. 게임 컨트롤러 충전 포트와 마찬가지로 먼지나 솜 부스러기가 접촉을 막는 경우가 흔하고, 포트 자체가 휘거나 어긋나 있으면 수리가 필요합니다. 연결이 자꾸 끊기는 무선 태블릿이라면 배터리 부족 → 리시버와의 거리 → 주변의 다른 블루투스·2.4GHz 기기 순서로 하나씩 확인해보고, 여기까지 확인해도 반복된다면 페어링을 초기화하고 다시 연결해보세요. 대부분의 무선 기기는 뒷면이나 옆면의 작은 구멍에 리셋 버튼이 있어, 핀으로 몇 초 누르면 페어링 정보만 초기화됩니다.
오해하기 쉬운 것 · 드라이버는 하나만
와콤 드라이버를 쓰다가 다른 제조사 태블릿을 추가로 연결하면서 두 회사 드라이버를 동시에 설치해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인식이 더 잘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드라이버가 서로의 입력을 가로채면서 필압이 안 먹거나 커서가 튀는 원인이 됩니다. 쓰지 않는 태블릿의 드라이버는 완전히 제거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같은 이유로 그래픽 프로그램 안에 내장된 태블릿 지원 기능과 제조사 드라이버가 동시에 필압을 처리하려고 하면서 충돌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상 증상이 반복되면 프로그램 자체의 태블릿 관련 설정도 한 번 꺼봤다 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