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꿔야 공부한 게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래서 꿈을 안 꾸면 손해 보는 것 같고, 꿈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연구를 들여다보면 초점이 조금 다릅니다. 기억 공고화에 관여하는 건 꿈 자체가 아니라 렘수면(REM sleep)이라는 수면 단계이고, 꿈은 그 렘수면 동안 뇌가 활동하면서 따라오는 부산물에 가깝습니다. 꿈을 기억하지 못해도 렘수면만 충분히 취했다면 기억 공고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렘수면과 비렘수면, 기억에서 맡은 역할이 다릅니다
수면은 크게 비렘수면(NREM, 깊은 잠을 포함)과 렘수면(REM)으로 나뉘고, 이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기억을 처리합니다. 비렘수면은 개념이나 사실 같은 선언적·절차적 학습을 강화하고, 렘수면은 복합 운동 과제, 정서 기억, 내적 표상을 조직화하는 쪽을 맡습니다. 렘수면 중에는 해마의 세타파(hippocampal theta oscillations) 활동이 기억을 통합하고 정서적 표지를 붙이는 과정을 돕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꿈을 꿔야 기억이 남는다는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운 뒤 렘수면을 충분히 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억 유지율이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핵심은 '꿈을 꿨는가'가 아니라 '렘수면이라는 뇌 상태를 거쳤는가'입니다.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렘수면 자체를 충분히 취했다면 기억 재처리와 정서 조절은 이미 진행된 상태입니다. 즉 학습을 위해 필요한 건 꿈이 아니라 렘수면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럼 꿈은 대체 왜 꾸는 걸까, 유력 가설이지 확정은 아닙니다
꿈이 학습한 내용을 반복 경험하거나 왜곡된 형태로 재구성하면서 일종의 기억 필터링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뇌가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옮기거나 불필요한 데이터를 솎아내는 과정이라는 설명인데, 이건 아직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유력한 가설 수준입니다. 꿈 내용 자체가 워낙 불완전하게 기억되다 보니 검증이 쉽지 않은 영역이라, '꿈이 이런 역할을 한다더라' 정도로 참고하는 게 안전하고,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꿈이 기억 안 나는 것도 뇌의 정상적인 설계입니다
대다수의 꿈은 깨고 나면 기억나지 않는데, 이것도 문제가 아니라 정상입니다. 렘수면 중에는 기억 회상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이 줄어드는데, 이 때문에 꿈이라는 경험 자체가 기록되지 않고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꿈을 잘 못 외운다고 해서 렘수면이 제 역할을 못 한 건 아니니 걱정할 부분은 아닙니다.
렘수면이 부족하면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학습 직후 렘수면 창(REM window)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실험에서는 미로 학습 같은 공간 기억 형성이 방해받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건 렘수면이 실제로 특정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는 실험적 근거입니다. 다만 이런 실험은 동물 대상 연구가 많아 사람에게 그대로 일반화하기보다는, '렘수면이 부족하면 특정 학습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정도의 방향성으로 이해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렘수면이 모든 기억에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렘수면만 선택적으로 박탈한 실험에서 정서적 기억의 공고화는 손상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어, 기억의 종류에 따라 어느 수면 단계가 더 중요한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렘수면이 없으면 무조건 기억이 망가진다'고 단정하기보다, 과제 성격에 따라 관여하는 수면 단계가 다르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정확합니다.
낮잠과 렘, 짧은 낮잠도 도움이 될까
밤잠뿐 아니라 낮잠도 렘수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20분 안팎의 짧은 낮잠은 얕은 잠 단계에 머물다 끝나 렘수면까지는 들어가지 않지만, 90분 정도로 길게 자면 얕은 잠, 깊은 잠, 렘수면까지 수면 주기를 한 바퀴 완성해 렘수면이 포함됩니다. 실제로 90분 낮잠은 40분 낮잠보다 주의력, 근력, 이동 거리 모두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였고 졸음도 뚜렷하게 덜했다는 운동선수 대상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오후 낮잠의 길이는 그날 밤 수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학생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25분과 90분 낮잠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낮잠 시간대와 길이가 이후 야간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시험 전날처럼 밤잠이 중요한 시기라면, 낮에 90분씩 길게 자기보다 20~30분 정도의 짧은 낮잠으로 피로만 가볍게 회복하고, 렘수면이 필요한 절차적 기억은 밤잠에서 챙기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리하면
학습에 정말 필요한 건 꿈을 꾸는 경험이 아니라 렘수면이라는 뇌 상태 자체입니다.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고, 대신 총 수면 시간과 수면 후반부까지 자는 습관을 챙기는 편이 기억을 지키는 데 훨씬 확실한 방법입니다.